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군의 일본군 전사자 사체 훼손 (문단 편집) == 원인 == 당시는 전세계가 [[총력전]]에 휘말렸던 만큼 세계적으로 인종에 대한 편견과 증오가 만연했고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때는 흑인뿐 아니라 이민 온 지 얼마 안 된 유럽인이나 재미 아시아인, 특히 미국과 전쟁하던 적성국가 출신 이민자들[* [[독일계 미국인]], [[이탈리아계 미국인]], [[일본계 미국인]].]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 일부 인종주의적 성향이 강한 소수의 백인들은 황인종을 백인과 동등한 인간으로 취급하길 거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전쟁이 시작되면서 [[인종주의]]적 편견이 포함된 [[프로파간다]]가 적극적으로 행해지면서 더욱 증폭되었다. 이로 인하여 일부에서는 일본군을 자신들과 동등한 인간으로 취급하길 거부하는 인식이 있었다. 가뜩이나 2차대전기 일반병사로 동원된 20대 청년들은 대부분 [[대공황]] 시기에 태어나 대부분이 망가진 유년생활을 보내다가 징집되어 태평양, 유럽 전선으로 보내졌으니 그 분노는 이루 말할 것이 없었다. 또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인한 선제공격으로 [[반일|일본에 대한 미국의 분노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이미 그때 [[백악관 행정명령 9066호]]까지 발효되었기 때문에 [[일본계 미국인]]들에 대한 신변구속 등의 행위는 합법적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강경해진 국내 분위기를 타고 태평양 전쟁에서 실제로 맞닥뜨린 일본군은 미군에 절대 자비로운 군대가 아니었으며 '''일본군의 미군 전사자 사체에 대한 훼손 행위는 가히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이러한 일본군의 행위는 속속히 미국에 전달되어 보도되었다. [[유진 슬레지]]의 저서에서도 [[펠렐리우 전투]] 당시 미군 전사자의 사체에 대한 일본군의 참혹한 시신 훼손 만행이 언급되며[* 슬레지와 동료 해병들은 머리, 사지, 성기가 잘려나간 참혹하게 훼손된 미 해병 시신 3구를 목격하게 되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슬레지와 동료 해병들은 일본군에 대한 어떠한 연민도 가지게 되지 않게 되었으며 미 해병이 보복으로 같은 행위를 저지르거나 일본군 포로를 잡지 않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증언했다. 또 전 해병 참전 군인이었던 [[로무스 발튼 버긴]]도 나무에 묶인 채 총검 연습용으로 쓰인 미 해병의 시신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토막이 난 미 해병의 시신을 보고 전후까지도 일본군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증언했다.] [[아버지의 깃발]]이라는 도서에도 포로가 된 해병대원 랠프 이그나토프스키(Ralph Ignatowski)를 총검으로 찔러 죽이고 팔뚝에 있는 해병대 문신을 훼손한 후 그 해병대원의 성기를 잘라 입에 쑤셔넣고 두개골을 부수고 팔을 절단하는 등 일본군의 끔찍한 시체 훼손 만행이 나온다. 이러한 분노의 표출 방법 중 하나가 [[가해자가 된 피해자|미군도 보복 차원에서 일본군 전사자에 대한 시체훼손을 자행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